‘오름’은 조그마한 산의 생김새를 뜻하는 제주 말이다. 다랑쉬 오름은 분화구가 ‘달처럼 둥글다’하여 다랑쉬라고 한다. 아끈은 ‘작다’란 뜻의 제주 말이다. 오늘은 화산체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어 ‘오름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다랑쉬 오름을 가기로 했다.
다랑쉬 앞에 도착하여 쳐다보니 데크로 설치된 계단이 45도 경사각이다. 일행 중에 다리가 불편한 분이 있어서 포기하고 왼편의 아끈다랑쉬 오름을 택했다.
개발이 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이라 아마도 개인 사유지인 것 같다. 오르는 길에 숨이 차서 쌕쌕거리는 휘파람을 하얀 구절초가 비웃는 듯하다. 앞에서 날렵하게 오르는 선배를 보니 그동안 열심히 걷지 않은 후회가 밀려온다. 후배로서의 체면치레로 포커페이스를 하고 있지만, 휘파람은 점점 크게 나오니 민망하다.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다른 팀과 여럿이 어우렁더우렁 오르다 보니 어느덧 정상에 도착했다. 여럿이 함께할 때 내는 에너지를 무시할 수 없다. 해 냈다는 뿌듯함과 동시에 정상에서 내려다본 경관은 그야말로 신천지다. 서울의 하늘과 비교가 안 되게 선명한 쪽빛 하늘에다 더 찐한 쪽빛의 바다가 영화에서나 보던 장면이다.
제주의 가을을 억새를 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은빛 물결의 일렁임에 황홀함을 떠나 어떤 주술적인 느낌마저 든다. 짜릿함을 오감으로 경험하는 첫눈 같은 두드림이다. 강릉에서 일출을 보고도 울지 않았는데, 와락 눈물이 난다.
정신을 차리고 아래를 보니 분화구가 동그랗고 아주 예쁘다. 이 분화구에도 빽빽하게 억새가 흔들리고 있다. 순간 지구촌을 빠져나와 어떤 이름 모를 별에 온 듯 착각에 빠진다. 가슴속 한 점 오염도 없이 다 비워낸다.
춤추는 억새 사이에서 나도 모르게 흔들린다. 흔들리는 억새 사이에서 오직 사랑과 배려만 간직하고 싶다는 다짐의 춤을 춘다. 감격에 겨워 필자가 춤추는 모습을 일행이 동영상을 찍는다. 내가 바람을 좋아한다는 결론이다. 바람! 아, 나는 바람이고 싶다. 마음대로 흔들리는 바람이고 싶다.
문득 김수영의 ‘풀’이란 시가 떠오른다.
풀이 눕는다/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풀은 눕고/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바람보다 더 빨리 눕는다/바람보다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더 빨리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김수영 시인이 이 시를 쓸 때의 시심이 지금 나와 같았을까. 풀 위에 눕고 싶기도 하고, 울고 싶기도 하고, 일어나서 막 웃어대고 싶기도 하다.
자연의 모습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누구나 가 볼 만한 곳이다. 아니 바람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더욱 가볼 만한 곳이다. 문득 이 바람을 이용하여 에너지를 얻을 방법을 연구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잠긴다. 이 필부필부가 무슨 힘이 있을까만, 생각만으로도 가상하다.
내려오는 길에 하얀 메밀밭을 본다. ‘메밀꽃 필 무렵’의 이효석이 아니라도 수평선과 맞닿은 메밀밭은 소금을 흩뿌려 놓은 듯해서 숨이 턱 막힐 지경이다. 고개를 넘고 개울을 건너고 벌판과 산길을 걷는 밤길은 아니지만, 허 생원과 동이가 걷는 산길 적막을 깨는 워낭소리 대신 어디선가 산새 한 마리 푸드덕 날갯짓한다.
군락을 이룬다는 것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흐드러지게 핀 메밀꽃이 서로 어깨를 기대고 도란거리는 모습과 키가 커서 쓰러질듯 한 억새가 서로 엉키어 흔들리는 모습이 어떻게 이다지도 아름다울 수 있을까.
제주의 자연에 가슴 저릿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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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닝선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