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년 생생한 교훈을 잊지 말자
지난 9월 7일, 중국 정부가 자국 내 비료업체 일부에 요소 수출 중단을 지시했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보도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중국 대형 비료 제조업체 일부가 이달 초부터 신규 수출 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있다며 “이미 적어도 한 개 생산업체가 비료 수출을 줄인다는 계획을 공개 밝혔다”고 전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중국산 요소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국가로 인도, 한국, 미얀마, 호주 등을 거론했다. 한국은 올해 7월까지 중국산 요소를 16만1,447톤을 수입해 인도에 이어 두 번째로 중국산 요소를 많이 수입한 국가다.
중국 장저우 상품거래소에서 요소 선물 가격은 지난 6월 중순부터 올 7월 말 사이 50% 급등한 이래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이는 중국 내 재고가 감소하고 수출이 늘어난 탓에 가격 상승에 기인한 것이다.
요소 32.5퍼센트, 증류수 67.5퍼센트의 비율로 혼합한 액체 성분인 요소수는 디젤 엔진에서 ‘선택적 촉매 환원’(SCR)을 통해 질소 산화물을 질소로 환원시켜 대기오염 물질 배출의 양을 절감하기 위해 쓰이는 요소의 수용액이다.
한국은 2021년 10월 중국의 요소 수출 제한으로 요소와 요소수(尿素水) 품귀 현상을 겪었다. 유독 화물·택배차나 버스 등 경유차에 필수였던 요소수 태부족에 국내에서 운송·물류 대란 등이 고조됐었다.
당시 평소 10L당 1만 원 수준이던 요소수 가격은 당시 10배 넘게 치솟으며 부르는 게 값이 됐고, 운전자들은 요소수를 구하지 못해 발을 굴렀다. 전국적인 물류 차질을 넘어 소방차와 구급차까지 멈춰설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왔다.
당시 요소수 대란은 정부 간 협의를 거쳐 중국이 수출을 허용하면서 두 달여 만에 해결됐다. 한국 정부는 이후 요소 수입처 다변화를 추진하여 중국산 요소 수입 비중은 2021년 71.2%에서 2022년에는 66.5%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중국산 비중은 올 들어 다시 급격하게 증가하기 시작하여 올해 상반기 89.3%로 급상승했다.
주로 농업용, 산업용, 경유(디젤) 차량용으로 쓰이는 요소는 중국 내의 석탄으로부터 주로 생산되어 왔다. 그런데 2021년 중국 내 석탄이 부족해지자, 중국 정부가 석탄과 더불어 요소 등 석탄으로부터 만들어지는 물질의 생산과 수출을 통제했다. 이에 세계적으로 요소 부족 현상이 발생했고 특히 요소 수입량의 97%를 중국에 의존하던 대한민국에서 일시적으로 요소 및 요소수의 품귀 현상이 발생했다.
차량용 요소는 유독 우려되는 부분이다. 민간 및 공공의 비축 물량은 겨우 2개월 분량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별다른 대비책도 부재한 상황에서 중국 수출이 본격 제한되기 시작하면 2021년 요소수 대란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 엄격한 ‘환경규제’로 수요급증
석탄에서 추출한 암모니아로 제조하는 요소는 경유차 배출가스 저감, 농업용 비료, 석탄발전소 탄소 저감장치 등에 두루 사용된다. 2021년 요소수 대란은 중국의 석탄 수급 불균형에서 시작되었는데,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친환경 국가임을 강조하고자 석탄 생산 감축에 들어갔다. 요소는 석탄을 활용해 생산되며 비료의 중요한 원료인데, 당시 중국이 겨울 밀농사를 앞두고 비료 가격 안정화를 위해 요소 수출을 사실상 중단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2021년 10월, 산서성 대홍수로 중국 내의 석탄 채굴장들이 침수당해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게 된다.
이처럼, 중국 내의 석탄 부족은 전기 생산과 겨울철 가정 난방과 화학산업에 차질을 불러왔다. 게다가 국제 요소비료 가격이 계속 오르자 중국 업체들이 전년 대비 2배 가까이 오른 요소 비료를 수출하면서 요소 재고량도 역대 최저치로 떨어졌다.
때문에 중국 정부는 수출입 통관 업무를 총괄하는 해관총서를 통해 2021년 10월 11일, 요소를 포함해 29개 화학 비료 관련 원료 품목들에 대해 검사 절차를 추가하는 규제를 신설했으며, 2021년 10월 15일부터 수출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당시 한국은 매우 높은 대중국 수입 의존율 및 다원화되지 않은 요소 수입처(전체 수입량의 97.6%)를 중국에 의존했기에 매우 큰 타격을 입었다.
유럽에서는 오래전부터 자동차의 질소산화물 배출을 엄격히 제한해왔다. 유럽의 유로6(경유차 배기가스 규제 정책)에서는 기존보다 질소산화물을 50% 이상 낮추도록 조치했고, 강화된 환경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자동차 업체들은 SCR(선택적 환원 촉매 장치) 방식으로 질소산화물을 처리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요소수 공급이 필요한 차량은 약 215만 대(디젤 승용차: 133만 대/화물차 : 55만 대)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된다. 한국에서는 2015년부터 배출가스 규제를 유로6 기준으로 시행하면서 제조사들도 디젤 자동차에 필수로 장착하기 시작했다.
2019년부터는 디젤 자동차 SCR 장착이 의무화되면서 최근 출시되는 디젤 차량은 모두 요소수를 사용한다. SCR이 설치된 차량은 요소수가 없을 경우 차량 시동이 걸리지 않거나 출력이 저하되는 등 사실상 운행이 불가능하게 설계되어 있다.
● 자원민족주의 ‘전략무기화’
요소수 대란 재현 움직임은 세계적 희소자원뿐만 아니라 각국의 수출입 부문에서 수요와 공급이 차질을 빚으면 언제든 자원무기화로 돌변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활짝 열어놓은 셈이다. 자원무기화 정책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식량 및 각종 천연자원 등을 무역이나 외교, 국방 등의 분야에서 전략적으로 무기화하는 정책을 의미한다.
중국은 첨단 산업에 쓰이는 핵심 원자재 51종 가운데 33종에서 세계시장 점유율 1위다. 중국은 미중갈등을 계기로 이번 요소 수출 제한처럼 원자재를 전략물자화 하고 있다. 실제로 중국 정부는 갈륨과 게르마늄 관련 품목을 허가 없이 수출하지 못하게 하는 규제를 시행해 반도체 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이에 대비하여 한국 역시 범정부 협업체계인 경제안보 품목 TF를 꾸려 주요 원자재 수급상황을 관리해왔지만, 예기치 못하게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국이 봉쇄조치 등 글로벌 공급망 리스크가 잇따라 터지면서 기존 체계만으로는 관리에 한계가 있다.
특히 미국과 중국이 자국 중심의 산업 정책을 펼치는 기조를 강화하면서, 한국도 이 같은 공급망 재편 움직임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 이른바 자원이나 기술 등에 대해 국가차원에서 공급망을 안정화 시켜 글로벌 교란을 대비하자는 ‘공급망 안정화 지원 기본법’이다.
일단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8월 24일 전체회의에서 ‘경제안보를 위한 공급망 안정화 지원 기본법’ 제정안을 의결했다. 공급망기본법 근간은 정부는 3년 주기로 공급망 안정화 기본 계획을 수립해야 하며, 공급망 정책을 별도로 심의·의결하는 공급망안정화위원회도 구축에 초점 맞춘다. 수출입은행 산하 공급망안정화기금도 신설된다. 공급망 충격 등 비상 상황에 대비하는 용도로, 채권 발행 등으로 재원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제2의 요소수 대란을 겪지 않으려면 사전에 공급망 다양화를 구조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대란 당시 구축해 놓은 중동, 러시아, 일본 등에서 대체 수입할 수 있지만 비용 상승은 불가피하다.
일각에선 사실상 한국을 향한 우회적 경고가 아니냐는 시각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중국은 한미일 3각 군사협력 체제를 강화하고 있는 갈등과 대립의 국면에서 요소 수출 통제 등 한국을 압박할 카드가 얼마든 있다는 메시지를 발신하려는 게 아니냐는 해석은 절대 기우가 아닐 수도 있다.
원본 기사 보기:
모닝선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