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세원인 ‘철저하게 규명해야’
지난 17일(금) 전국적으로 마비돼 큰 불편과 혼란을 안겼던 정부 전산망이 이번주 20일(월)에서야, 모두 정상으로 돌아왔다. 정부는 전산망 장애 원인을 ‘L4 스위치’라는 네트워크 장비 오류로 보고 있다. 이 장비를 모두 교체한 뒤 시스템이 정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부는 복구된 지금도 “장비 오류가 있었다”는 설명뿐, 초기 상세 원인은 명료하게 밝히지 못한 상태이다.
국가 행정전산망 장애로 공공기관의 민원서류 발급이 올스톱 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17일 오전 8시 40분 전산망 장애가 처음 확인했다. 사용자 인증 문제로 장애를 일으켜 민원 업무에 차질 사례가 급증했다. 이에 전국 공공기관의 온·오프라인 민원서류 발급이 모두 중단됐다.
인감 증명이나 전입 신고, 취업지원서 제출, 해외 출국에 차질이 생긴 시민들이 속출했다. 인터넷 등기소도 불통되었고, 은행에서도 신분증 확인이 되지 않았고, 전입 신고, 부동산 계약 등에 필요한 서류를 발급받으려던 시민들이 극심한 불편을 겪었다.
그럼에도 정부는 피해가 재난급으로 커지는데도 그 흔한 안내문자 하나도 보내지 않았다. 오후 5시가 되어서야 일선 관공서에 업무 처리 지침이 내려갔다. 그 시간 동안 공무원들과 민원인들은 우왕좌왕할 뿐이었다. 금요일에 사고가 난 탓에 긴급한 업무를 다음주로 미루게 된 시민들은 복구 즉시 토·일요일에도 주민센터를 열라며 정부의 무성의한 대처를 성토했다. 디지털 강국을 표방하는 한국의 공공 전산망이 이틀이나 먹통이 되면서 심대한 체면을 구긴 것이다.
국가기관 전산망에 오류가 발생한 것이 올해 들어서만 벌써 이번이 세 번째다. 앞서 올해 3월엔 법원 전산망이 마비됐다. 재판사무시스템, 법관통합재판지원시스템 등 내부 전체 업무시스템과 전자소송 홈페이지 등 일부 외부시스템의 서비스가 중단됐다. 당시 김상환 법원행정처장은 ‘재판사무 및 전자소송시스템 중단 사태’ 관련 사과문을 통해 “수원회생법원과 부산회생법원에 회생·파산 관련 사건의 데이터를 이전하는 작업 중 문제가 발생했다. 프로그램적 오류 등으로 인해 목표 시간까지 이관을 완료하지 못했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6월엔 전국 초·중·고교에서 학교 행정 업무에 사용하는 나이스의 새 버전이 개통하자마자 오류가 발생해 학교 현장이 대혼란에 빠졌다. 당시 교사노동조합연맹은 “업무가 폭증하는 학기 말에 나이스로 인한 ‘교육 재해’가 발생했다”며 날을 세웠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17일 오전부터 새올지방행정정보시스템의 접속 오류가 발생해 원인을 분석한 결과, 새올시스템에 접속하는 GPKI인증시스템에 장애가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지난 19일 밝힌 바 있다. 행정 전산망 ‘새올’과 ‘정부24’의 서버와 네트워크 장비 관리 주체는 대전 국가정보관리원이다.
● 모든 책임 ‘정부가 감수하기로’
천재지변 등의 국가 비상사태가 아닌데도 공공기관의 민원서류 발급이 전면 중단된 것은 중대한 사건이다. 국민 생활의 불편을 넘어 부동산 계약 차질과 금융 거래 중단 등 경제적 피해까지 속출했다. 이에 국민의 모든 생활이 불편이나 일절 차질이 없도록 정부의 신속한 보상책임은 당연한 것이다.
정부 행정전산망인 ‘시도 새올행정시스템’이 서비스 중단 사흘만인 지난 19일 복구됐다 이에 따라 월요일인 지난 20일(월)부터 동 주민센터 등 민원 현장에서 각종 증명서 발급이 정상화되었다. 행정절차법 제16조에 따르면, 천재지변이나 그 밖에 당사자 등에게 책임이 없는 사유로 기간 및 기한을 지킬 수 없는 경우에는 그 사유가 끝나는 날까지 기간의 진행이 정지된다는 규정이 있다.
행정안전부는 정부24 등 온라인 서비스 장애와 관련, 국민이 불이익을 받는 일이 없도록 주민센터에서 처리되는 납부, 신고 등 공공 민원에 대해서는 납부기한을 장애가 복구돼 납부할 수 있게 되는 시점까지 연장을 이미 밝힌바 있다. 또 확정일자 등과 같이 접수와 즉시 처리를 요하는 민원은 민원실에서 먼저 수기로 접수를 받고 소급 처리하기로 했다.
각종 행정 서류 발급을 중단시킨 행정 전산망 장애가 통상 지침인 ‘3시간 이내 복구’를 넘긴 장기화 국면은 문제 원인이 심층 복합적이기 때문이다. 단순 네트워크 장비, 인증 서버뿐만 아니라 노후화된 공무원 전용 행정 전산망 ‘새올’ 시스템과 ‘재해복구(DR)’ 시스템까지 총체적 문제가 한 번에 표출됐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정보기술(IT) 업계에서는 대기업 배제 정책으로 공공 전산망 구축을 여러 업체에 쪼개서 발주한 것을 원인 중 하나로 본다. 국가 데이터 구축사업에 참여한 한 IT업체 임원은 “국가정보자원관리원 시스템은 서버, 하드웨어, 네트워크, 보안, 응용프로그램 등 영역별로 참여 업체가 다르고 업무별로도 프로그램과 시스템이 다르다. 관련 업체가 여러 곳이다 보니 원인 파악에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원인 파악에만 무려 이틀이 소요되었다는 것이다.
아울러 IT 서비스·보완 업계 등은 정부 발표와 달리 노후화 새올 시스템도 문제의 한 원인일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실제 이번 민원 업무 셧다운 직전에 새올 서버 업데이트 작업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백업 서버가 정상 작동하지 않았고, 테스트 없이 전산망을 가동하면서 시스템 일부가 손상됐을 가능성도 나온다.새올 시스템은 지난 2007년 도입돼 15년 이상 전국 시·군·구에서 운영됐다. 정부 또한 차세대 새올 시스템 도입을 검토하다가 여러 가지 이유로 결정을 미룬 것이 사태를 키우지 않았나 생각한다.
문제는 비단 여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은행의 경우에는 시스템 업그레이드와 패치를 위해 최소 한 달 전부터 공지하고, 중단되는 서비스 내용을 미리 예고한다. 충분한 작업 시간을 갖고 업그레이드 등을 하지 않아 문제가 촉발된 것이다. 쫓기듯 시스템을 점검하고 작업을 진행하다 보니 문제가 일파만파 커졌다는 것이다.
●디지털 역량 강화! ‘근본적 해결책’
2022년에는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을 포함한 카카오 서비스가 10월 15~16일 이틀에 걸쳐 시간 넘게 중단됐다. 에스케이씨앤씨(SK C&C)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로 15일 오후 3시30분께부터 카카오와 네이버 일부 서비스에 오류가 발생한 것이다. 카카오톡이 10시간 넘게 끊어진 건 출시 12년 만에 처음이다.
이와 함께 보건복지부 차세대 ‘사회보장정보시스템’은 지난해 10월 초 개통 이후 온갖 오류로 제 기능을 하지 못해 비판을 받았으며, 현재까지도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차세대 사회보장정보시스템은 부처별 사회 복지를 담당하는 대형 정보기술(IT) 시스템을 통합·개편하는 프로젝트다. 기초 생활보장, 기초 연금, 보육 등 120여개 복지 서비스를 국민에게 보다 편리하게 지원·제공하는 게 목표다.
이번 행정전산망 먹통 사태는 디지털 시대에 사회적 재난에 다름 아니다. 또 언제든지 장애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위험신호다. 행정망이나 전력망·통신망 등 국가 기간망의 작동 불능은 안보 분야에서도 치명적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시스템이 먹통이 된 것도 문제지만, 이럴 때를 대비한 비상 매뉴얼 없이 우왕좌왕한 것은 큰 문제다. 정부는 이번 사태의 원인을 철저히 규명해 관련자의 책임을 엄중히 묻고 유사 사태의 재발을 막아야 한다.
이제라도 행정전산망 장애 대응체계와 서버 관리 체계 시스템에 문제가 없었는지 면밀하게 살펴 근본적이고 철저한 재발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진상을 제대로 조사해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행정 전산시스템에 대한 데이터 통합 설계도를 구축해야만 문제가 발생했을 때 즉각 원인을 파악하고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디지털 기술을 가진 우량 인재를 유치하는 것이 디지털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이기에 디지털 관련 교육 및 훈련을 한층 주도적으로 강화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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