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은 ‘서동왕자’로 친숙한 백제무왕이 태어난 익산
3.1운동 100주년 맞아 평화의 상징 비둘기 옥새제작
‘문화융성’ 긴호흡으로 동일한 의식과 공감대 추진을
국새! 국왕 권위와 정통성 상징 ‘國內外 문서에 공인’
단정하면서 웅건한 봉황! 조형미가 빼어난 수작 평가
남북화합 상징 백두와 한라를 결합한 통일국새 염원
● 제5대 국새 장인에 이른 여정을 문화‧역사적으로 소급하여 달라
▼ 삼국시대에 이르러 각국의 개성을 보여주는 다양한 금속공예품들이 나왔습니다. 고구려는 귀족의 장신구 및 무기류가 주로 발전했는데, 관모 뒤에 새의 깃을 꽂는 금동관과 태환식 귀걸이가 대표적입니다. 백제 역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무령왕과 왕비의 금귀걸이와 금관 장식 등에서 우아하면서도 화려한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양감이 두드러진 백제 금동대향로도 만들어집니다. ‘금관의 나라’ 신라에서는 화려하고 정교한 금속공예가 발달했습니다.
제가 출생한 익산은 ‘서동왕자’로 친숙한 백제의 무왕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자 그의 마지막 염원이 깃든 미륵사지와 왕궁리유적이 남아 있는 곳입니다. 이 두 유적은 백제의 찬란했던 문화의 흔적과 고대 국가들과의 문화교류를 보여주는 유적지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유산에 등재됐습니다.
아울러 왕가의 사찰터인 제석사지와 무왕과 선화공주의 능으로 추정되는 쌍릉 그리고 동서남북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익산토성까지 백제문화와 관련하여 함께 둘러볼만한 여행지가 많습니다. 이러한 삼국의 역사적 배경과 흔적이 저를 제5대 국새 장인으로 있게 한 든든한 버팀목과 자양분이라 할 것입니다.
국새는 ‘고조선 환웅이 환인으로부터 천부인을 가져왔다’는 근거에서 비롯될 정도로 깊은 역사를 가졌습니다. 아무리 사인이 일반화된 ‘서명시대’이지만, 국새는 국가의 정신적 권위와 실체적 권력의 상징이고, 법적 효력까지 가졌습니다.
우리나라는 역사를 통해 보면 국새를 얻지 못한 왕은 신하들이나 백성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과거 국새는 하늘이 내린 것이고 나라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려·조선 시대에는 국인(國印)·새보(璽寶)·어보(御寶)·대보(大寶)라 하여 왕의 인장이 국새로 간주되었습니다. 이것은 국왕의 권위와 정통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사대·교린의 외교 문서 및 왕명으로 행해지는 국내 문서에 사용되었습니다. 이렇듯, 제가 오늘날 최고의 자리에 있게 된 것은 지천명(知天命)의 염원과 섭리에 따른 귀결이라 할 것입니다.
▲ 제5대 국새는 ‘단정하면서 웅건한 봉황! 조형미가 빼어난 수작’으로 평가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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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상대 국새 장인은 이론과 실기를 모두 겸비한 것으로 알려진다. 순탄치 않은 길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 저의 유년시절은 예체능 쪽에 관심이 많은 아이였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막도장을 파기 시작했으니 나름 소질이 있었지요. 붓글씨도 잘 썼고 사생대회 등에 나가 입상도 했습니다. 특히 태권도를 잘해서 국가대표 선수가 되겠다는 당찬 꿈을 가지고 있었지요. 그런데 무릎부상으로 더 이상 운동을 못하게 되면서 진로를 바꾸게 되었습니다.
이후 저는 전문대 공예학과에 진학했지만 배운 것이 너무 미진하다고 느꼈습니다. 교수님의 권유로 원광대에 금속공예과에 다시 입학해 금속공예를 처음부터 다시 배웠습니다. 4년 동안 열심히 배웠지만 대학에서 배운 것은 주로 이론과 예술성 이었습니다. 실용성이 없었던 것입니다. 저는 1989년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현장 실무를 배우기 위해서였습니다.
무일푼으로 서울에 올라와 취업을 하려는데, 대학 졸업자라는 이유로 문전박대를 당했습니다. 기술을 배우겠다는 간청 끝에 겨우 취업할 수 있었습니다. 취업해서도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기술 노출을 꺼린 기술자들은 어깨 너머로 배우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이 시절 잘 곳이 없어 공방에서 종이상자를 깔고 자고, 배를 곯은 적도 여러 번입니다.
이렇듯, 남대문·종로에서 배운 실무가 국새 제작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저는 세밀한 머리칼까지 재연하는 정밀주조 기술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전통공예 분야에서부터 디자인과 거푸집, 주물까지 모두 할 줄 아는 몇 안 되는 장인으로 손꼽힙니다.
▲ 우리 이웃의 수많은 장인에게 자부심을 불어넣는 국가 차원의 지속가능 지원책을 촉구하는 한상대 국새장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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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5대 국새 장인에 등극하게 된 전후 사정을 간략하게 말씀하여 달라.
▼ 4대 국새장의 불미스런 행각으로 인해 국·내외적으로 망신을 당하는 소동을 치렀고, 2011년 행정안전부의 국새제작공모를 통해 제5대 국새장인으로 등극하게 되었습니다.
5대 국새공모는 학맥이나 인맥보다는 투명성과 공정성을 바탕으로 오직 실력으로만 겨룰 수 있었습니다. 원광대 공예과를 나온 저는 당시로서는 무명작가였습니다. 인간문화재나 외국에 유학해 디자인을 배운 유명 대학교수의 작품을 모두 제치고 제가 당선된 것입니다.
공모전에서 국새를 만들고 누구의 작품인지 모르게 하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쓰고 검정 테이프로 감아 제출했습니다. 이에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인간문화재, 대학교수, 유명작가 등 실력가들과 경합을 벌인 끝에 무명의 지방대 출신인 제가 선정된 것입니다. 심사위원장이 철저하게 중립을 지키며 국새 제작 과정에서 예술성은 물론 실용성과 상징성 및 창의성을 동시에 인정받아 ‘대한민국 제5대 국새장인’으로 선정된 것입니다.
● 제5대 국새장인으로 선정되었을 때, 심사위원들의 평가는 호평 일색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후 작품 활동은?
▼ 시인 이산하는 이 국새에 대해 “두 마리 봉황이 무궁화꽃을 피우며 날아오르고/ 태양 속에서는 삼족오가 봉황의 날개를 끌어당긴다/ 무궁화 꽃잎들이 천하를 가득 메운다.”고 노래했습니다. 또한 “모든 것은 예리한 눈빛과 섬세한 손끝에서 나왔으니/ 그 외롭고 혹독한 수련의 세월을 무엇으로 말하리/ 그러나 가슴속에 항상 찬란한 국새를 품고 있었으니/ 온갖 차별과 굴욕의 순간들도 깃털처럼 가벼웠으리.”며, 제가 제작한 국새의 치열하고 고뇌어린 작품성에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로 화답하였습니다.
국새는 그 시대 최고의 예술성과 과학성이 결합한 결정체입니다. 제5대 국새 심사위원들이 남긴 심사평에 의하면 “조각기술이 섬세하며 안정적인 자세의 봉황과 적절히 조화된 생략과 강조의 부분이 잘 표현 돼, 상징의 표현을 넘어 국운의 기상을 잘 상징화 했다.”는 호평을 받았습니다. 제5대 국새에서 특히 강조한 것은 선입니다. 주물공정에서 선을 살리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어렵습니다. 봉황의 벼슬에서 시작해 날개와 몸체를 감아 꼬리까지 내려오는 선이 하나로 이어져 있습니다.
저만의 독특한 선은 “부드러우면서 예리하고, 묵직하면서 날렵하고, 섬세하면서도 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당시 심사위원장인 최응천 동국대 미술사학과 교수는 “봉황의 자세와 날개, 꼬리 부분을 역동감 있게 조각해, 힘 있고 단정하면서도 웅건한 봉황의 느낌을 충실히 표현하였고, 조각기술과 조형미가 뛰어난 작품”이라고 평가한 바 있습니다.
현재 여건상 많은 작품을 소장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매우 아쉬운 대목입니다. 저는 1996년 미국 애틀랜타 올림픽 기념 이봉주 마라톤화, 월드컵 트로피 금형 등을 제작했습니다.
MBC 전통사극 주몽, 선덕여왕, 이산, 동이 등에 쓰인 왕관과 비녀, 검 등 다양한 장신구를 제작하고, 궁중유물인 고궁박물관 소장 삼인검을 재현하기도 했으며, 20여 차례의 공모전 수상과 기능경기대회 심사장 및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아울러 익산에 있는 보석박물관 아트갤러리의 개막 초대전을 갖기도 했습니다.
▲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평화의 상징’ 비둘기를 형성화한 옥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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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19년에는 3.1운동 100주년 기념 옥새를 제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
▼ 지난 2019년은 기미년 3·1독립만세운동 1세기가 된 해입니다. 올해가 벌써 103주년입니다. 3년 전에 나라를 찾고자 일제와 맞서 싸우다 돌아가신 민족 선열을 기리고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역사관과 민족성을 고취시키고자 민족의 역사와 혼이 담겨있는 비폭력 3.1운동 100주년 옥새를 제작하게 되었는데, 이 재질이 바로 은이었습니다. 은은 비소 같은 독극물에는 아주 민감하기에 왕실에서 생명을 보존하는 비밀병기이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생명을 담보하는 은재질에 재앙이 끝나고 희망을 가져 왔다는 의미에서 ‘평화와 상징’ 비둘기를 조형화 하여 비폭력 3.1운동 100주년 옥쇄를 제작하였습니다. 평화의 축제인 올림픽때 화합의 무대로 비둘기를 함께 날려 보내는 것으로 비둘기는 한층 평화의 상징으로 각인 되었습니다.
3·1독립만세운동은 5,000년 한민족의 경이적 저력이며 민족사적 대기념비입니다. 일제 강점기의 암흑기를 끝장낸 자주독립은 물론이고 왕권에서 민권으로 전이되는 정신사적 토대가 모두 3·1운동으로부터 배양된 것입니다. 3·1운동은 지식인과 학생뿐 아니라 노동자, 농민, 상공인 등 각계각층의 민중들이 폭넓게 참여한 최대 규모의 항일운동으로 독립운동사에서 커다란 분수령을 이루었습니다. 나라 안팎에 민족의 독립 의지와 저력을 보여주었을 뿐 아니라, 독립운동의 대중적 기반을 넓혀 독립운동을 체계화·조직화·활성화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국새장인하면 일단 부와 명예를 떠올리는데?
▼ 제가 국새를 만들고 받은 대가는 구체적으로 말씀드릴 수 없지만 너무 초라하여 말씀드리기가 민망할 정도입니다. 내가 돈을 더 받겠다고 그러는 게 아니라, 국새 장인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이 그것밖에 안 된다는 말을 하는 겁니다. 아슬아슬하게 임대료 내고 재료비를 충당합니다. 예술은 돈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특히 금속공예 분야는 투자자를 엮고 이를 재벌이나 미술관 등과 연결하는 판로가 있어야 합니다. 이 분야도 학연과 지연으로 얽혀 있습니다. 재벌들이나 미술관이나 박물관이 소장할 만한 고가 공예품은 ‘학벌’로 이어진 인맥으로 제작되고 거래됩니다. 적당히 타협할 줄 모르는 저의 성격상 이 또한 쉽지 않습니다.
공예를 하는 후배들도 처음에는 의욕을 가지고 시작하지만, 수입이 되지 않아 대부분 그만두는 것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한민족 특유의 자랑스러운 기예와 재주가 대한민국을 기술 강국·경제 대국의 반열에 올려놓았다면, 우리 이웃의 수많은 장인에게 긍지와 자부심을 불어넣고 이들 자신의 계발과 또 다른 장인의 등장이 산업과 경제의 성장을 넘어 지속가능한 국가 발전의 토대가 될 것입니다.
▲최고장인 명예의 전당 설치 및 대시민 홍보 강화를 통해 최고장인의 가치와 예우를 높여 숨은 장인을 찾아내고 장인이 되려는 사람을 늘려 숙련기술의 저변 확대를 꾀할 것 ▲최고장인 해외 연수, 상호 교류 등 계발과 발전의 계기를 제공해 세계적 수준의 장인으로 성장시킬 것 ▲ 최고장인 기술 전수·보급을 위한 기업 및 대학과의 네트워크 구축, 후학양성 제도기반 마련, 기술교육과 제조산업 참여 기회를 추진할 것 ▲최고장인 선정분야 및 직종을 시대적 변화에 따라 다각화해 보다 많은 장인을 발굴할 것 등 네 가지를 관계 당국에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전통공예 분야에서부터 디자인과 거푸집, 주물까지 모두 할 줄 아는 몇 안 되는 장인으로 손꼽히는 한상대 국새장인 (사진 국새장인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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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한국은 경제강국이다. 이어 문화융성의 국가로 나아가야 하는데 조언하여 달라.
▼ 한 나라를 유지 발전시키는 힘은 강력한 군사력이나 경제력 같은 외형적인 것보다는 그 나라 국민의 정신문화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동서고금의 역사를 통해 수없이 보아왔습니다.
양질의 예술과 사회적 문화·복지 수준의 향상은 긴밀한 관계입니다. 다수가 예술 분야에 종사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비효율성의 증대가 아니라 사회적 안전망을 확보하는 효과적인 투자라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아울러 초·중·고등학교에서 이뤄지는 예술 교육의 적극적인 지원이 청소년 문제와 사회 범죄율을 낮추는 데 매우 적절한 투자라는 것을 강조 드리고 싶습니다.
‘문화융성’이라는 기조는 한 정권 내에서 당장 실효를 거둘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호흡을 길게 잡고, 정권이 바뀌더라도 동일한 의식과 공감대를 갖고 이 운동을 추진해 가겠다는 국가적인 의지가 필요합니다.
작품 활동을 하면서는 만들어가는 과정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너무 안이하게 자기가 하는 것에 만족해선 안 됩니다. 어느 정도 하면 끝날 줄 알았더니 모르는 게 자꾸 나와요.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게 별 것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죠. 그러기 위해서는 공부해야 할 것이 정말 많아요. 사회학부터 인문학 전반, 과학 등등 다른 학문에 대한 다양한 관심을 갖고 깊이 있게 공부해야 해요.
이제 국새장이라는 칭호를 얻어 인생의 목표를 이룬 셈입니다. 최종적인 예술적 작품으로 통일정부의 국새를 만들고 싶습니다. 남북의 화합을 상징하는 백두산과 한라산을 결합한 통일의 국새를 염원하고 있습니다.
현 국새는 새로 만든 남북통일을 결의하는 문서에 날인한 뒤 영구 보관되고, 통일헌법에는 새로운 통일국새를 썼으면 합니다. 특히 올해는 민족의 진운을 결정하는 중요한 한해가 될 것입니다. 국민적 화합과 단결이 절실히 요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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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닝선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