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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州 정율성 공원 조성 ‘때아닌 이념논쟁’
 
소정현기자

 

 

 

이념 논쟁 뜨겁게 점화

 

정율성(鄭律成) 선생은 광주 출신 음악가로, 항일 운동을 위해 중국에 건너가 조선의열단에 소속 돼 활동했다. 1939년에는 중국 공산당에 가입한 뒤 중국 인민해방군 행진곡과 북한 군가를 작곡한 인물이다.

 

광주 출신 음악가 정율성의 생가 정비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동구 불로동 일대 정율성 역사공원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2018년 시작돼 48억 원이 투입됐고 연말 완공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때 아닌 이념 논쟁이 가열되면서 뜨겁게 점화되고 있다.

 

정율성 선생을 지지하는 측은 의열단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자 중국 3대 음악가로 한중 우호 관계의 상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에 방점을 찍는다. 반면 반대하는 측은 해방 이후 북한으로가 노동당원으로 활동했고, 중국 인민지원군으로 한국전쟁에 참여하는 등 공산당 활동을 부각시키고 있다.

 

지난 828일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전남 순천에서 열린 6·25 참전 학도병 기념행사에서 정율성은 우리에게 총과 칼을 들이댔던 적들의 사기를 북돋웠던 응원대장이었다. 수많은 애국 영령의 원한과 피가 아직 식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박 장관은 지방자치단체(광주시)의 자율성이 존중돼야 하지만 국민들의 뜻을 거스르면서까지 광주시가 강행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업을 저지하기 위한 법적 조치도 여러 방면으로 검토 중이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 또한 정율성 역사공원관련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대한민국 정체성을 훼손하는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피력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울러 윤 대통령은 국가보훈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관련된 모든 부처가 신속하고 철저히 대응해야 한다등의 지시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행정안전부나 국토교통부, 문화체육관광부 등 국가의 보조금과 예산 집행 과정에 대한 철저한 점검을 요청한 것으로 해석된다. 행안부 감사관실은 지난 823정율성 공원조성 사업과 관련한 예산 자료 등을 광주광역시에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828일에는 더불어민주당 송갑석 최고위원은 광주시가 추진하는 정율성 역사공원조성 사업 논란과 관련해 혐오와 차별, 낡아빠진 이념 공세와 갈라치기는 광주는 물론 대한민국 그 어디에서도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경고한다역사공원이 정율성 찬양 미화 작업이라는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의 말은 국민과 광주에 대한 명백한 모욕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강기정 광주광역시장은 보훈단체와 보수단체를 부추겨 광주를 다시 이념의 잣대로 고립시키려는 행위를 중단해 주시기를 바란다. 국가와 함께 추진했던 한중우호 사업인 정율성 기념사업은 광주시가 책임을 지고 잘 진행하겠다고 피력했다.

 

정율성의 혈육 모두 독립운동에 헌신

 

중국 3대 혁명음악가 중 한 사람이자 항일정신을 고취한 작곡가로, ‘중국 100대 영웅에 이름을 올린 정율성 선생은 조국인 우리나라보다는 중국에 더 많이 알려진 인물이다.

 

1990922일 북경에서 열린 제11회 북경 아시안게임 개막식의 서곡과 201593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항일전쟁승리 70주년 전승절 열병식에서 울려 퍼진 중국인민해방군가인 팔로군행진곡!’ 중국인들에게 애국가로 여겨지는 이 곡을 작곡한 사람은 정뤼청이라 불리던 한국인이자 빛고을 광주가 낳은 세계적인 음악가 정율성(1918~1976)’ 선생이다.

 

그의 한결같은 소원은 조국의 독립이었다. 정율성(본명 정부은) 선생은 일제강점기였던 1914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수피아여학교 교사였던 부친 정해업의 53녀 중 5남으로 태어나 3세 때인 1917년 화순 능주로 이사한 후 1922년 능주공립보통학교(현 능주초등학교)에 입학한다. 1924년 다시 광주로 이사한 후 광주숭일학교로 전학했으며, 15세 때인 1929년 전주신흥중학교에 입학한다.

 

정율성 선생의 큰 외삼촌인 최종흥은 목사이자 교육자였으며, 민족운동가로서 31운동 당시 서울에서 독립운동시위를 주도적으로 이끌 만큼 항일 기백이 대단했다. 정율성의 형제 또한 모두 항일 운동에 헌신했다. 첫째형 정남근과 둘째형 정인제, 셋째형 정의은 등이 모두 독립운동가로 활약하였다. 이런 모습을 보며 성장한 정율성은 자연스레 음악을 통해 항일과 독립에 대한 의지를 다지는 음악가로 거듭날 수 있었다.

 

정율성 선생은 1933년 중국으로 건너가 의열단(義烈團)에 가입했다. 의열단은 약산 김원봉을 단장으로 하는 무장독립운동단체로 1919119일 설립됐다. 이때 의열단장이던 김원봉이 음악으로 성공하라는 뜻으로 율성’(律成)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1936오월의 노래(1936)’를 필두로 팔로군 행진곡(현 중국 인민해방군 행진곡·1939)’ 등을 작곡했다. 1945년 광복 뒤 북한에서 조선인민군 행진곡등을 작곡했다. 1956년 이른바 ‘8월 종파사건을 계기로 중국에 귀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인들이 정율성에 보낸 사랑과 성원 그리고 업적에 비해 그의 말년은 초라했다. 1966년부터 시작된 문화대혁명 기간에 홍위병들의 수많은 협박과 함께 악보 등이 유실되는 등 시련을 겪었다. 10여 년간 벌어진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중국과 북한의 인민군 군가를 작곡한 정율성조차도 공연 기회를 박탈당하고, 작품 활동에 심한 제약을 받게 된다. 그는 문화대혁명의 막바지인 197612, 조카 손녀인 은주를 데리고 베이징 근교의 강가를 산책하다 뇌일혈로 쓰러져 별세했다. 그의 나이 62세였다.

 

성숙한 시민의식의 배양

 

이렇듯 조국의 독립을 위해 힘쓰던 정율성 선생의 이름은 냉전 시대를 거치며 망각되었다. 정율성이 알려진 건 냉전종식과 화해·평화를 기치로 내건 1988년 서울올림픽 때부터이다. 당시 조직위원회는 정율성의 부인인 정설송 여사를 초청해 한중 우호의 상징으로 강조했다. 이후에도 정부 차원의 음악회가 열리는 등 한중 우호관계 차원에서 음악가 정율성이 조명됐다.

 

광주에서는 지난 2004정율성국제학술대회를 시작으로 2005년부터 정율성국제음악제를 개최하고 있으며, ‘정율성로를 조성하는 등 다양한 사업들을 진행하고 있다. 이밖에도 정율성기념사업회 발족, 정율성 동요 합창경연대회, 정율성 아카이브전, 정율성 오페라 발레 공연, 정율성 사진전 등을 통해 정율성 선생의 업적을 기리는 행사가 꾸준히 속개되고 있다.

 

정율성 선생의 흔적이 남아 있는 화순과 전주 등 타 지역에서도 역사·문화자원으로서 정율성 선생을 기리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처럼 정율성 선생은 생전에는 항일투사이자 민족음악가였고, 세상을 떠난 이후에는 한국과 중국 문화의 가교역할을 하고 있다.

 

이처럼, 정율성 선생의 삶은 일제의 한반도 강제 병합이라는 암울한 시대와 동족상잔의 비극이라는 역사의 흐름과 함께 하였다. 또한 정율성 선생뿐만 아니라 그의 일가 대부분도 항일독립운동에 매진하였으며,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 및 독립장이 추서되는 등 호남을 대표하는 독립운동 가문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는 반공이라는 잉크 한 방울만 묻혀도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앗아갈 수 있는 시대를 종식하고자 수많은 목숨이 희생되고 헤아릴 수 없는 정치적, 사회적 비용을 치렀다. 물론 우리 국민 어느 누구도 정율성 선생이 공산당 활동을 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를 찬양하거나 비호하지 않는다.

 

그동안 어떠한 문제 제기도, 별다른 논쟁도 없었던 이유는 분명하다. 광주 시민은 물론 우리 국민은 역사적 인물에 대한 공과 과를 지극히 객관적인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면서 합리적이고 지혜롭게 판단할 수 있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배양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의 생애 중 한 면만을 부각시켜 정체성을 규정짓는 것은 국민통합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정율성 역사공원이 최초의 취지와 목적에 따라 순조롭게 조성되길 바라며, 이후에도 소중한 역사문화자원으로 보존되기를 바란다.

 

 

 


원본 기사 보기:모닝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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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3/08/29 [20:40]  최종편집: ⓒ 투데이리뷰 & 영광뉴스.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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