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범도함! ‘함명 변경 논란’
최근 국방부가 홍범도 장군의 소련 공산당 활동 이력을 이유로 육군사관학교 내 홍 장군 흉상 이전을 결정하자 여권과 정부·군 일각에서는 홍범도함의 함명도 변경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불거져 나왔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8월 31일 국회 예결위 전체회의에서 “우리의 주적과 전투해야 하는 군함을 상징하는 하나의 이름을 공산당원이었던 사람으로 하는 것은 적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수정을 검토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 역시 지난 9월 4일, 예결위 전체회의에서 “홍범도함 명칭에 대해 변경을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겠나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군함의 이름 짓기는 해군 고유의 권한이다. 고속정급 이상의 함정은 해군본부 전력기획참모부장(소장)이, 전투근무지원정은 군수참모부장(준장)이 함정 확보 단계에서부터 함명 및 선체번호 제정안을 작성하고, 해군 참모총장의 승인을 받아 통상 진수 한 달 전 결정된 후 진수식 때 선포된다. 이때야 비로소 군함은 정식 이름을 소유한다.
해군은 지난 9월 9일 해군본부에서 역대 참모총장들이 참가하는 정책자문회의를 개최했다. 회의에는 전 해군참모총장 10여명이 참석했으며, 몇몇 총장은 최근 불거진 홍범도함 함명 변경 움직임에 반대 의견을 개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정부가 ‘함명 변경 작업에 착수하지 않았다’는 입장인 점을 고려해 공동 입장을 내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 함명(艦名)에는 ‘어떤 인물이’
함명(艦名)에는 국민들로부터 영웅으로 추앙받는 왕이나 장수 같은 역사적 인물, 호국 인물의 이름을 붙이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민족 간의 전투에서 공훈이 있는 장수는 배격한다. 신라의 김유신 장군이 고구려, 백제를 무너뜨린 ‘삼국통일’의 대업에도 불구하고 함명 이름으로 쓰이지 않은 배경이다.
‘백두산함’(PC-701함)은 해군장병들과 국민들의 성금으로 미국에서 구매한 함정으로서 한국 해군 최초의 전투함이자 유일한 전투함이었다. 백두산함은 1950년 6월 26일 북한의 무장병력을 태운 함선을 부산 앞바다에서 침몰시켜 후방으로 침투하는 북한군을 격퇴함으로써 부산 및 남해안의 안전을 확보한 쾌거였다.
2002년 5월 22일, 해군은 대우 조선 옥포조선소에서 한국형 구축함인 ‘충무공 이순신함’ 진수식을 가졌다. 4천톤 급인 ‘충무공 이순신함’은 전장이 150m,속력은 최대 30노트로, 대함 미사일인 하푼과 중거리 함대공 유도탄인 SM-Ⅱ 등을 탑재하고 있으며, 배타적 경제수역을 넘어선 먼 바다에서도 작전을 수행한다.
동명이인(同名異人)이 있는 것처럼 군함 중에도 같은 이름을 쓰는 경우가 있다. 바로 충무공 이순신(李舜臣)함과 장보고급 잠수함인 이순신(李純信)함이다. 구축함에 쓰인 이순신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충무공이며, 잠수함에 들어간 이순신은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휘하에서 맹활약한 장수다.
2003년 4월 12일, 진수된 한국형 차세대 구축함인 ‘문무대왕함’은 한국 기술진의 자체 설계에 의해 건조된 4천5백 톤급으로 기존보유 최대함인 3천500t급 ‘광개토왕함’에 비해 1000여t이나 커 대함, 대공, 대잠 및 전자전 수행이 가능한 한국 최초의 스텔스 구축함이다. 소말리아 해역에서 해적 소탕의 임무를 수행한 것으로 유명하다. 신라 30대 문무왕의 호국 의지를 계승한다는 뜻에서 이름이 붙었다.
한국 해군 최초의 ‘대형상륙함’(1만4천톤)인 ‘독도함’은 뜨거운 영해 수호의지와 함께 영원히 침몰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2005년 7월 12일,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부산 한진중공업에서 열린 진수식 축사에서 “독도함은 우리의 자주국방 의지와 세계 정상의 조선기술이 이뤄낸 값진 성과”라며 “우리 역사를 봐도 국력이 쇠약했을 때 바다는 침략의 통로가 됐고 국운이 융성했을 때 바다는 번영의 터전이 됐다”고 치하한바 있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상호 민감한 문제에 대해 자극을 피하자는 양국의 이해를 무시했다”며 유감을 표시했지만, 한국 정부는 “영토 주권에 대한 심대한 침해 행위”라고 무시했다.
2007년 5월 25일에는 한국 해군을 명실상부한 대양(大洋)해군으로 발돋움 시킨 꿈의 함정인 ‘이지스 구축함’(KDX-Ⅲ) 중 처음 건조된 ‘세종대왕함’이 현대중공업에서 진수식을 갖고 시험운항에 들어갔다. 원래 해군은 조선 숙종 때 일본의 울릉도와 독도 침략을 방어한 어부 안용복을 함명으로 검토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일본을 자극할 것을 우려해 세종대왕함으로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논란이 된 홍범도함은 1800톤 손원일급 잠수함 중 7번째로 만든 잠수함으로 함명은 2016년 2월 제정됐다. 홍범도함은 2008년 진수한 3번함 ‘안중근함’부터 항일독립운동가의 이름을 함명으로 채택했다. 김좌진함(4번함). 윤봉길함(5번함), 유관순함(6번함), 홍범도함(7번함), 이범석함(8번함), 신돌석함(9번함) 등이 있다.
잠수함은 바다의 암살자라고 불린다. 과거에 우리를 압제했던 일본에게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노력하셨던 열사들의 존칭을 잠수함에 붙이는 것은 매우 적절한 것이다.
● ‘불가침권과 치외법권’ 영역
군함 이름에 주변국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군함의 상징성 때문이다. 군함도 군대와 같은 의미에서 국가기관이다. 이에 국제법은 군함을 국토의 일부로 인정한다. 군함이 외국 항구에 입항하면 일반 상선과 달리 치외법권을 누린다.
따라서 군함은 공해상에서 어떠한 국가의 관할권으로부터도 완전히 면제된다. 군함은 상선과 달라서 외국의 영해에서 무해통항권(無害通航權)을 갖지 않으나, 합법적으로 외국의 영해 또는 항만에 있는 동안에는 불가침권과 치외법권을 가지고 해당국의 재판 관할로부터 면제된다.
군함을 우리의 기술과 힘으로 건조하기 시작한 것은 국민이 낸 방위성금으로 고속정을 건조해서 취역시킨 1972년도라고 할 수 있다. 그 뒤 우리 해군은 1980년의 한국형 구축함 건조에 이어 1982년에도 한국형 초계전투함을 건조하여 취역시킴으로써 ‘고속정·구축함·초계전투함’ 등 모든 군함을 한국 해역의 특성에 적합하게 배치하게 되었다.
군함은 해군에게 존재의 근거다. 무형의 전력이 유형의 전력만큼이나 중요한데, 군함에 있어서는 그 명칭은 무형 전력의 하나다. 군함은 육군 탱크나 공군 전투기처럼 하나의 무기체계이면서 승조원들의 생활공간이다. 출항하면 장기간 배에서 생활하는 해군에게 군함은 집이자 일터다. 해군의 문화와 정체성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세계 해군의 표준을 만든 영국 해군은 군함 이름이 사람처럼 영혼을 소유하고 있기에 한번 확정한 군함 이름을 바꾸지 않는 철칙을 준수하고 있다. 해군에게 정체성의 근간인 군함 이름을 외부에서 뚜렷한 명분이나 합리적 이유 없이 갑자기 변경을 강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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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닝선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