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에선 생소한 일 ‘검사탄핵’
보통 ‘탄핵(impeachment)’하면 대통령 탄핵을 떠올린다. 최근에는 내각도 그 대상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지만, 헌법은 여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탄핵의 기본개념은 권력기관에 대한 국민주권 발동이라 판사와 검사도 엄연히 탄핵대상이다.
국회는 지난 9월 21일 더불어민주당이 당론으로 발의한 현직 검사 탄핵소추안을 의결했다. 이날 본회의에서 안동완 검사 탄핵소추안을 재석 287명 중 찬성 180명, 반대 105명, 무효 2명으로 가결했다.
탄핵소추 대상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 피해자를 보복 기소한 의혹을 받는 안동완 수원지검 안양지청 차장검사다. 현직 검사에 대해 탄핵소추가 이뤄진 것은 헌정사상 처음으로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이어 두 번째다. 안 차장검사는 탄핵소추안 가결로 곧바로 직무가 정지됐다. 헌법재판소의 심판을 통해 탄핵 여부는 최종 결정된다. 헌재에서 탄핵이 결정되면 해당 검사는 5년간 공무원이 될 수 없고, 5년간 변호사 일도 할 수 없다.
안 검사는 2014년 5월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 시절 유씨를 대북송금(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검찰이 2010년 이미 기소유예한 사건이었던데다, 유씨가 국정원 직원들의 ‘간첩 조작’ 의혹을 폭로하고 연루된 검사를 고소한 직후여서 보복성 기소라는 지적이 나왔다. 실제 2021년 대법원은 “검사의 자의적인 공소권 행사”라며 대북송금 혐의에 대한 검찰 공소를 기각했다.
앞서 지난 9월 19일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100여명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안 검사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검사징계법에 따라 검사가 잘못해도 검찰총장이 징계 청구를 하지 않으면 징계할 수 없다. 검사 탄핵은 검사와 싸우자는 것이 아니라, 주권자인 국민을 무서워하지 않는 검찰정권과 싸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가 검사를 탄핵하는 소추안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의 찬성으로 발의된다. 발의된 탄핵소추안은 국회 본회의에 보고된 뒤 24∼72시간 내에 무기명 투표를 실시해야 하며,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가 찬성하면 탄핵안은 가결돼 헌법재판소로 보내진다.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해당 검사는 즉시 권한 행사가 정지된다. 헌법재판소 재판관 9명 중 6명의 찬성으로 탄핵은 최종 확정되며 탄핵이 확정되면 해당 검사는 파면된다. 그리고 이 기간 내 표결이 이뤄지지 않으면 탄핵안은 자동 폐기되면,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따라 동일 회기 내에는 다시 발의할 수 없다.
지난 2021년 2월 더불어민주당은 임성근 판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해 가결시켰다. 하지만 국회를 통과한 탄핵 소추안은 이미 퇴직한 상태였기 때문에 헌법재판소에서 각하됐다. 2007년에는 BBK 사건 부실 수사 의혹으로 통합민주신당이 제출한 BBK 수사 검사 3인(김홍일 서울지검 3차장, 최재경 특수1부장, 김기동 부부장 검사)의 탄핵소추안이 발의됐지만 기한 경과로 폐기됐다.
또한 12대 국회(1985년 10월) 때 유태흥 대법원장에 대한 탄핵소추 ‘결의안’이 부결됐고, 18대 국회에서 신영철 대법관 탄핵소추안(2009년 11월)이 발의됐지만, 처리 시한 경과로 폐기된 전례가 있다.
● 美國과 日本의 ‘탄핵 사례’
2018년 11월 11일, 국회 입법조사처가 국내외 법관 탄핵제도와 사례를 비교한 뒤 사법권 남용 견제를 위한 탄핵제도 개선 필요성을 제기했다. 입법조사처가 펴낸 ‘법관탄핵 해외자료-미국과 일본 사례’ 자료를 간략히 살펴본다.
하원에서 탄핵소추를 발의해 상원에서 심리 및 탄핵 여부를 결정하는 미국에선 이제까지 15명의 연방법관이 탄핵 소추돼 8명이 파면됐다. 탄핵소추 사유로는 권한 남용, 재판 중 자의적·고압적 재판 지휘, 재판 거부, 소송당사자와 부적절한 사업상 관계, 위증 혐의와 뇌물요구 모의 혐의, 허위진술, 절차방해, 성폭력, 탈세 등 다양했다.
국민의 공무원 파면권이 인정되는 일본에선 재판관 9명이 탄핵심판대에 올라 7명이 파면됐다. 재판관 탄핵소추 청구건수는 최고재판소가 8건, 변호사가 2666건, 일반국민은 89만4243건에 달한다. 재판관소추위는 이 가운데 1만9814건을 수리한 뒤 9명을 소추했다.
일본의 재판관 탄핵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헌법을 근거로 하고 있다. 그러나 극명한 차이점은 일본은 모든 절차를 국회에서 시작하여 국회에서 마무리되고 있다. 한국에서 탄핵소추는 국회가, 탄핵 심판은 헌법재판소가 하지만 일본은 탄핵소추와 심판 모두 국회의 몫이다. 재판관 탄핵이 입법부의 고유한 권한인 셈이다.
일본에서 탄핵 절차와 과정은 탄핵소추장이 접수되면서 시작된다. 국민이나 최고재판소(한국 대법원격)의 청구를 받으면 중의원과 참의원 각 10명씩 총 20명으로 구성된 국회의 탄핵소추위원회가 절차를 개시한다. 또한 탄핵소추위원회는 직권으로 재판관을 탄핵소추 할 수도 있다. 최종심의 결과 파면을 소추하기로 했다면 소추장을 탄핵재판소에 제출한다.
이어 탄핵재판소는 중의원(하원)·참의원(상원)에서 각 7명씩 14명의 국회의원들이 맡는다. 일본 헌법 64조1항을 보면 ‘국회는 파면의 소추(기소)를 받은 재판관을 재판하기 위해 양의원(중의원·참의원)의 의원으로 조직한 탄핵재판소를 설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탄핵재판소는 국회에서 독립된 기구로서 활동한다. 상설 사무국을 두고 관련 인원도 독자로 뽑아 쓴다. 일본 도쿄에 있는 참의원제2별관에 탄핵재판소 법정이 있다. 그러나 아무 때나 탄핵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탄핵소추에 시효를 두고 있는데, 파면 사유의 발생으로부터 3년이 넘으면 탄핵 소추할 수 없다.
특이한 점은 탄핵으로 파면된 재판관이 선고 5년이 지나면 자격회복을 청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재판관으로 탄핵되면 변호사로도 활동할 수 없는데, 일정 기간이 지나고 탄핵 사안에 대해 반성하는 등 사유가 있으면 탄핵재판소에서 자격회복재판을 열어 복권시키기도 한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부문이 있다.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로 한정한 한국의 헌법 제65조 탄핵 사유보다는 폭넓은 해석이 가능하다. 탄핵 재판의 절차는 형사소송법의 규정을 따르게 돼 있지만, 위법 여부를 가려 처벌하는 형사소송과는 구분된다는 의미이다.
일본의 재판관탄핵법 제2조는 ‘법관이 직무상 의무를 위반하거나 직무를 심각히 해태한 경우, 기타 직무 내외적으로 재판관으로서의 위신을 현저히 실추시킨 비행이 있는 경우’에 탄핵을 통해 재판관을 파면할 수 있다고 정의하고 있다. 우리 한국의 경우 현행법을 어겨 형사법으로 처벌하는 것과 달리 비행으로 볼 수 있는 행위를 한 때에도 파면할 수 있다는 뜻이다.
● 사법권력 ‘실효성 있는 탄핵제도’
우리나라에선 영미권 국가들과 달리 국회의 탄핵소추에 의한 검사 파면이 아주 낯설다. 이미 대통령을 필두로 고위법관과 행안부장관을 상대로 국회의 탄핵소추 사례가 축적되었지만, 민심과 동떨어진 정치검사, 비리검사, 추태검사는 모두 탄핵소추 칼날에서 비켜 있었다.
이런 부류의 검사는 “여소야대 국회가 들어설 때마다 탄핵소추로 반드시 쫓아내야 여대야소 정권에서도 정치검찰이 사라지고 형사정의와 국가기강이 바로 선다”는 여론을 적극 존중해야 한다.
현재 이재명 당대표 수사를 지휘한 검사들에 대해선 탄핵을 추진하기 어렵다. 탄핵소추권으로 방탄 프레임으로 맞선다는 비난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전 과오가 명료한 검사들은 탄핵을 추진해도 역풍에 겁낼 필요가 없었다.
아울러 우리나라는 직무에 관한 위헌·위법 행위만을 탄핵 사유로 정하고 있는 것에 비해 주요국들은 더 넓은 탄핵 사유를 정하고 있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일반 국민의 탄핵소추청구제도가 마련된 경우 등은 특이한 사항이다. 이런 점들을 반영하여 사법 독립원칙을 엄중히 하면서도 사법권력 남용을 제대로 견제하는 실효성 있는 탄핵제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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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닝선데이